“美·EU·英, 중앙은행이 감독권 가진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 속 한은의 항변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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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 2025-07-28 04:48

일반기사 “美·EU·英, 중앙은행이 감독권 가진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 속 한은의 항변

기사입력 2025-07-23

작성자 최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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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금융당국 조직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과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자료제출요구권을 요구하며 감독권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건전성 관리 수단을 보유하지 않아 금융시스템 불안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논의는 거시건전성 정책 전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지로 확산하고 있다. 거시건전성 정책은 금융부문의 리스크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별 금융기관의 안정성 관리를 넘어 시스템 전체 차원의 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도입됐다. 대표적으로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이 있다.

◇ 한은, 은행 공동검사권만 보유… 비은행엔 자료요구도 못해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한은이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금융저널(JIMF)과 함께 주최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중앙은행의 감독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한은이 거시 건전성 정책 수단과 미시 감독 권한을 보유하지 않아 정책 대응의 신속성과 유효성이 떨어진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은의 권한 강화를 촉구했다.

한은의 요구는 금융기관 건전성에 대한 통합적 관리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DSR과 LTV 등 거시건전성 정책 권한은 금융위원회가 갖고 있다. 또 금융기관에 대한 미시건전성 정책인 단독검사권 등은 금융감독원이 보유 중이다. 한은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은행 감독권을 금감원에 내준 이후 현재는 금감원에 금융기관 공동 조사·검사 요구만 할 수 있다.

금융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 대해서는 감독은커녕 자료 제출조차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은법상 자료제출요구권 적용 대상이 은행과 은행지주회사 등으로 제한돼 있어서다. 한은이 작년 7월 예금취급기관 중앙회와 자산운용사를 환매조건부매매(RP) 매매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으로 추가하는 등 비은행권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있는데도 이들에 대한 관리 수단은 전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제약은 더 크다. 은행 내부에서는 공동검사를 나가더라도 단독검사 권한이 있는 금감원과 한은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피감기관이 제공하는 자료의 질도 다르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면 금감원에 요청해 자료를 받아야 하는데, 거시건전성을 바라보는 두 기관의 태도가 달라 원하는 자료를 제대로 얻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0일 한은 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금융위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한은 등 여타 금융안정 유관기관과의 협조 체계는 형식적인 수준”이라면서 “거시건전성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화로운 운용이 제약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주요국선 중앙은행이 건전성 정책 한 축… “한은 목소리 높여야”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거시건전성정책을 운영하는 금융안정감시협의회(FSOC)의 위원으로 참여하며, 연준 이사회는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규제기준을 직접 만들 수 있다. 규제기준에서 벗어나는 금융기관이 있을 경우 서면으로 감독기관에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할 수 있다. 주요 은행에 대해서는 직접 감독도 가능하다.

EU에서도 중앙은행이 거시건전성정책 운영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ESRB)에 따르면 29개 회원국 중 13개국이 중앙은행이 단독으로 거시건전성 정책을 담당하고 있으며, 8개국은 중앙은행 주도로 유관기관과 함께 구성된 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산하의 단일은행감독기구(SSM)를 통해 유로존 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한다.

영국은 중앙은행에 더 큰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기존 통합감독기구였던 금융감독원(FSA)을 해체하고 미시건전성 감독 및 거시건전성 정책 기능을 영란은행으로 일원화했다. 또 영란은행 내 거시건전성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정책위원회(FPC)를 신설하는 한편, 기존 FSA를 영란은행 산하기관인 건전성감독원으로 개편해 금융기관 감독권한을 집중시켰다.

이 총재도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0일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이 목소리를 높여 거시 건전성 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권한 강화를 요구한 바 있다. 한은은 이런 의견을 토대로 지난달 국정기획위 업무보고에서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과 거시건전성 관리 정책수단 확보를 골자로 한 ‘금융안정 정책 체계 개편안’을 제시했다.

아직까지 금융권은 한은의 목소리에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융위는 감독과 검사 권한은 행정권이므로 민간기구가 아닌 정부 기관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기관들은 단독 감독 권한을 가진 기관이 늘어나면 규제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기검사 한 번만 나와도 행장님부터 말단 직원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데, 검사권한이 있는 기관이 늘어나면 은행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은은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우리가 단독 검사권을 행사하는 게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니라, 거시경제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금융기관을 관리하는 게 좋을지 논의해보자는 취지”라면서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한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하는 만큼,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관 간 업무 조정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